파운드는 미국 아이다호주의 뉴잉글랜드에서 태어났으나 후에 고국을 등지고 유럽으로 평생에 걸치는 예술 세계의 방랑길에 올랐다. 우선 런던에 정착해 T.E.Hulme과 더불어 시인클럽을 조직하고 이미지스트 운동(Wallace Stevens 참조)을 전개하였고, 개인적인 접촉 혹은 잡지의 편집 등을 통하여 문단의 사실상의 중심세력이 되어 20세기 문학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중대한 영향을 행사했다.

그의 현대시 운동의 기본 방향은 그의 이미지스트 시를 위한 주장에 드러나 있다. 그는 ‘시는 산문처럼 잘 쓰여야 한다’라고 했고 사물을 직접 다룰것, 일상용어를 쓰되 반드시 정확한 언어여야하며, 추상적인 언어는 쓰지 말 것을 주장하여 시에서 관념과 감정의 남용을 배제하고 로맨티시즘을 극복하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주관성, 문법성, 논리성을 무시한 그의 시들은 사실과 사물들을 맥락없이 배영하고 합성하였기 때문에 난해하다. 그의 단편적이고 탈구조적 시의 모범은 윌리엄즈의 'Say it, no ideas but in things'의 시론에 영향을 주었다.

파운드는 1924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살다가 그곳에서 2차 대전 중에 무솔리니 정부에 협력한 죄로 전후 국가반역죄로 몰려 정신병원에 연금되기도 했으나 결국 정신 이상의 판정으로 석방되어 다시 이탈리아로 건너가 살았다. 그는 한시, 시경 등 중국 고전의 번역과 중세 라틴문학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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