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파운드, 윌리엄즈, 스티븐즈와 동시대 시인이었던 Moore의 시에는 많은 개혁과 실험 정신이 있어서 흔히 Emily Dickinson과 비슷하다고 사람들은 보고 있다(그러나 그녀는 딕킨슨과는 달리 활달한 성격이었다). 그녀는 form에서 많은 실험을 했다. 그녀의 시는 시행이 들쭉날쭉 잘려서 짧은 시행을 이루고 있고 시행의 첫 글자를 소문자로 시작하여 산문의 흐름처럼 긴장 없이 평이하게 시의 흐름이 전개되고 있다. 이처럼 그녀는 시와 산문의 구분을 무시할 정도로 객관주의적인 시 정신을 크게 강조하였다. 

무어와 윌리엄즈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관찰력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subject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subject 자체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나무를 바라볼때 무리는 나무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나무가 생각하고 느끼는걸 똑같이 느끼게 된다). 그녀의 시는 또한 개별적인 대상에 대한 예리한 관찰이 특징이다. 상징이나 주관으로 시상을 표현하지 않고 지적이며 감성적인 상상력을 활용하여 날카로운 관찰력을 통해 정확하고 상세한 시상이 담긴 아름다운 시를 씀으로써 그녀의 시는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녀의 시의 소재는 동물에 관한 것이 특히 많은데, 동물을 통해 인간 세계의 도덕성을 제시하는게 대부분이다. 동물 이외에도 무어는 조그만 것에 큰 의미와 중요성을 두며 연약하고 하찮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해서 시의 소재로 사용한다. 따라서 그녀의 시에서는 약자가 영웅이 되는 경우도 있고 중요하지 않은듯 싶은게 주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풍부한 것만이 행복이 아니며, 작지만 그 작은 것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게 참행복이라는 그녀의 정신이 반영된 것이다.

무어의 시의 내용은 진부하지도 않고 전통적이지도 않다는 점에서 시상이 윌리엄즈와 비슷하다. 그녀는 이미지즘(Wallace Stevens 참조)의 영향으로 시의 회화적 조형미, 삽화 등을 활용하여 문자를 자유롭게 구사했으며 그에 따른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따라서 그녀는 시어, 음악, 회화를 혼합한 ‘삼위일체(Three units)’의 시인이라고도 일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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