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영국은 정치, 사회적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화려했던 번영은 쇠퇴하고 지나친 물질주의와 과학의 발달로 전통적인 도덕사상과 종교사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1,2차 대전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비극적인 피의 역사였다. 이로인해 인간성은 더욱 상실되었고 사회는 황폐되어갔다. 그리고 고통, 절망, 허무, 단절의 세계로 변했는데 이것은 현대 영문학의 주제가 되었다. 문학은 성서를 근원으로하여 인간과 사회의 종교, 도덕 사상을 주제로 다루던 전통을 지양하고 내용 중심의 주제보다는 형식을 강조했다. 언어, 문체, 기교 등의 대담한 실험을 통해 상징주의 기법으로 사회와 인간의 내외적인 생활을 묘사했고 미래의 희망을 제시라는 예언 문학을 의도했다. 한편으로 Hopkins, Yeats, Eliot 등과 같이 종교, 예술, 사회를 함께 조화시켜 다양한 상징주의 문학을 형성했다.

1910년대에서 2차대전이 일어나기 전 시기의 movement를 주도한건 엘리엇과 파운드이다. 특히 엘리엇은 그 시대 대표할만한 큰 특징을 내세웠는데 그건 바로 직접적으로 얘기 안한고 돌려서 간접적으로 얘기하는 것이었다. 되도록면 suggestiveness하고 암시적인 방법을 통해 복잡한 사고와 사물의 복잡한 성질을 표현하고자 했다. 결국 나타난 것은 의도적 모호함이었고 이런 엘리엇의 영향이 너무 엄청나서 이런게 하나의 법칙, 유행처럼 되어버렸다. 또한 그 당시 엘리엇이 내세운것은, 시는 escape from personality라 하여 그 당시에는 anti-emotional한 반감성적인 시들이 많았다. 시인들은 자신의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감정에 대해 다루기 보다는 dry, impersonal한걸 다루게 되었다. 따라서 그 당시의 시에서는 개인의 사상을 보기보다는 시인이 또 다른 인물을 창조하여 시인의 감정과는 상관없게 보이도록 했다.

그러다가 일어난 2차 대전은 사회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2차 대전을 통해 45년 이후의 시인들은 시가 사회에 개혁을 가져오고 그런것을 변화시키기엔 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미국 시인들에게는 1,2차 대전에 미국이 두번 다 참여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혐오감을 느꼈으며 회의를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직면한 과제는 사회내에서의 시인과 시의 position이 과연 무엇인지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시라는 것이 서야할 땅을 다져주고 마련해 줘야 예술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시의 본질적인 function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따라다니게 되었고 따라서 이 당시에 literary theme에는 writing 자체에 대한 것들이 많았다. 결국 그들은 시란 하나의 매체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전에 시인과 독자의 관계는 선생님 학생 관계였던 것에 비해 이제는 동등한 입장에서 share하게 되어 독자들과의 틈을 어느정도 메꾸기 시작했다. 또한 45년 이후에는 엘리엇이나 파운드를 중심으로 한 시의 suggestiveness, impersonality, obscurity 등을 정리하고 이에 대항하여 clear, personal, confessional한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의도적 모호함보다는 clear하게, impersonal하기 보다는 자신의 속 감정을 표현하였다. 2차 대전 직후이므로 바깥 세상을 바라보는 두려움이 남아 있어 내면의 세계를 통해 밖의 세계를 바라봐서 내면적인 속 이야기가 많았던 것이다.

이러다가 50년대에는 비트 운동. 레트키, 비숍, 로웰들 고백적인 시들이 지닌 특성을 활용해서 너무 내면 세계에만 치중하지 않고 점점 외부로 넓게 바라보는 시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 당시 영국에서는 The Movement(Larkin 참조)라는 시운동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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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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