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st는 엘리엇, 윌리엄즈 등의 신시운동의 기교상의 혁신에 항상 반대를 하며 Whitman에 의해 이미 free verse가 선포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칭찬한 로빈슨처럼 그도 전통적인 형식적 제약 속에서 시를 쓰기를 좋아했다. 엘리엇, 파운드, 에이미 로웰 등의 주도하에 Modernism이 활발히 진행되던 시기에 복잡한 인유와 상징, 도회적 삶의 황폐성, 인간의 불모를 다루지 않고 그 나름대로의 사실적, 암시적 기법을 통해 자연과 인생을 조명한 미국 시인이다.

프로스트는 에밀리 디킨슨이나 Edward Arlington Robinson처럼 New England 지역을 대상으로 노래한 시인인데, 독자들이 유독 프로스트를 이 지역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이유는 그의 시상이 어느 시인보다 New England적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소재로 노래할 때 프로스트의 관심은 항상 외적 세계에만 안주하지 않고 내적 세계에 얽힌 사건들을 인간의 지혜로 다양하게 응답하려는 쪽으로 흐른다. 그래서 그의 시는 뉴잉글랜드 지역의 제한적 자연묘사에서 탈피하여 인간의 위치와 역할이라는 보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워즈워스가 자연과 인간을 주관적으로 부합시킨 일원론자인 반면, 프로스트는 자연에 몰입하거나 관념화하여 그에 도취되지 않는다. 그는 자연과 인간을 합일이 아닌 각각 독립된 대상으로 병치시킨 이원론자로, 자연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냉철하게 관찰하여 그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파악했다. 긍적적인 면의 자연은 선과 악이 공존하며 인간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는 것이고, 부정적인 자연은 위협적이며 무관심한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자연관은 자연에 대한 예찬이나 자연과 인간의 영적인 합일을 추구하는 워즈워스나 기타 19세기 낭만주의 시인과는 다른 점이다. 이런 자연의 양면성으로 부각되나 자연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그의 관심은 항상 인간이었으며 따라서 그는 단순한 자연시인이 아니다. 그는 어느 TV에서 자신의 시에서 인간이 그 안에 담긴 시는 오직 두편 뿐이며 자신을 자연시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말한다. 그의 궁극적인 관심은 인간의 삶에 있으며 그의 시의 중심사상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인 것이다.

프로스트의 theme, attitude, philosophy 등은 굉장히 미국화, Americanize 되었다. 프로스트는 전통을 유지하되 그것을 어떻게 American soil에 정착시키나를 항상 고민하며 노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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