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den은 후에 30년대 시인들과 같이 스스로의 역사적, 사회적 위치를 자각아고 당시의 사회, 문화 현상의 문제점을 분석하여 개선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의 초기시는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에 중심을 두며, 인간은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의해 규정된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사회의 실제모습과 사회 속의 인간의 상태를 드러내어 사회의 병적인 상태를 치료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그러나 후기에는 낭만주의자들과는 달리, 시를 통해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Yeats가 아일랜드 movement에 회의를 느꼈듯이 오든도 시를 통해 새로운 정부를 새우거나 전쟁을 막는다는 것은 너무 이상적이며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대신 시는 병든 사회와 사람들의 심리를 다루면서 사람들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고독감, 슬픔, 주변환경에 대한 생경한 느낌을 위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로인해 사람들은 시의 표현을 통해 삶의 현상들에 대해 직시할 수 있어서 결국 시는 하나의 messaege를 전해주는 mouth, channel로 남는다고 보았다. 즉, 시는 삶의 여러 happening의 도구가 아니라 시 자체가 하나의 happening이라고 본 것이다.

오든의 시들은 형식적인 면에서 볼 때 문체가 매우 다양하다. 그는 시에 있어서의 모든 예술적 장식성을 배제하고 어느 한 문체만이 올바른 것이라는 주장도 경계했다. 이에 따라 그의 시들에는 초기시부터 실험적이고 전통적인 문체들이 다양하게 쓰인다. 홉킨스의 시에서부터 내려온 현대 영시의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강한 어조와 명확하지 않은 문장 구조에서부터 디킨슨의 짧은 경구와 대화체 등 다양한 문체들을 사용하고 있다.

오든은 엘리엇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영국 교회의 movement에 대한 강한 개입 이외에도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태어난 엘리엇은 order와 tradition을 찾기 위해 영국으로 귀화했고, 반대로 오든은 영국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그 당시 런던 문학계에서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variegation(다양성)과 diffuseness(산만, 장황함)을 찾기 위해 미국으로 귀화하며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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